'시대의창이 만든 책들/근현대사 인물·평전'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06/25 장준하 평전
  2. 2009/02/05 안중근 평전
  3. 2008/02/11 약산 김원봉 평전
  4. 2007/06/11 녹두 전봉준 평전
  5. 2006/11/12 임종국 평전
  6. 2006/08/15 만해 한용운 평전
  7. 2006/03/24 심산 김창숙 평전
  8. 2005/11/15 씨알 함석헌 평전
  9. 2005/08/15 단재 신채호 평전
  10. 2004/08/15 백범 김구 평전

● 시대의창 리뷰

‘금지된 동작’을 제일 먼저 시작한 위대한 혁명가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과 같은 한국현대사에 핀 한떨기 연꽃과도 같은 존재”라고 평한 저자 김삼웅이 한국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책을 냈다.《장준하 평전》은 장준하 선생의 삶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고통 받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잡지《사상계》를 한데 묶어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렸다.
   이 책 초반부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성장 과정을 다룸으로써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이 광복군으로 일제와 맞서면서 그리고 해방 뒤 김구 선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상의 폭을 넓혔고, 이러한 사상의 성장은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주의 투쟁과 민권 투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사상계》라는 잡지가 우리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주로 다루었다. 저자는 1957년 3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할 말은 있다>라는 글이 이승만 독재 시절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국민들의 입을 대변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사상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사상계》는 시사문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4.19혁명기에는 ‘이론지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러나 저자는 오점도 있다고 지적한다. 친일 지식인 ‘최남선’ 추모 및 5.16쿠데타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계》는 당시 시대정신이었다. 이후 《사상계》는 박정희 정권의 고사작전으로 점차 경영이 어려워져 1970년 5월 1일 통권 20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아울러 이 책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장준하 선생은 1945년 광복군 자격으로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여의도공항에 도착한 지 만 30주년이 되는 1975년 8월 17일에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했다. 여기서 ‘의문사했다’라고 말한 이유는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한 과정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정보기관의 자료 미확보’란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이란 판정을 내렸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역사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며 책 부록에 민주당이 직접 조사한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게재했다. 또 장준하 선생 사후 이청준, 고은, 김수환, 법정, 문익환 등 각계 인사들의 추모글도 함께 게재했다.
   30여 년 전에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삶을 지금 이 시점에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 씨는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제기한 장준하, 백기완 선생을 비롯한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 정권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즉 장준하 선생이 청산하고자 했던 것들이 다시 현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현 정부, 갈수록 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 남북관계, 어용지식인, 어용언론인들의 반시대적인 칼춤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지난 시절의 암울했던 유산을 추종하는 정치인들, 언론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 제주4.3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해방 후 양민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 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위서》《白凡 金九全集》(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박열 평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안중근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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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하 평전
분야 : 인문/역사
지은이 : 김삼웅
판형 : 4*6변형(120*188) 양장
쪽수 : 592쪽
가격 : 16,900원
발행일 : 2009년 6월 25일
ISBN : 978-89-5940-149-9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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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창 리뷰

 고결한 삶을 살다 간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올해(2009년)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토살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다. 그리고 내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적 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천하에 떨친 그의 행적이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되어온 탓이다.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인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다시 안중근일까.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공동체 EU와 같은 기구를 100여 년 전에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를 ‘지나간 미래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끝맺지 못한 논설《동양평화론》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모습 등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역사적 사료와 증언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과 각종 전기 등을 수록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부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옥중에서 쓴 각종 휘호를 정리해 수록했고, 중국에서 발했되었던 《민우일보》에 실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사설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을 게재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100여 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총과 칼이 ‘자본’이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강대국은 약소국을 위협하고 그들의 이익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100여 년 전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논리거나 이상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은 분명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위약으로《동양평화론》을 끝맺지 못한 채 순국했다. 다시 말해《동양평화론》의 완성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해방 후 양민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 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위서》《白凡 金九全集》(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박열 평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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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평전
▸ 분야 : 인문/역사 
▸ 지은이 : 김삼웅
▸ 판형 : 4*6변형(120*188) 양장
▸ 쪽수 : 596쪽
▸ 가격 : 17,800원
▸ 발행일 : 2009년 2월 5일
▸ ISBN : 978-89-5940-136-9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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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창 리뷰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20세기 최고의 독립운동가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약산 김원봉 선생. 그는 일제 관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렸다던 의열단을 창단하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의열단장,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장, 조선민족혁명당 당수, 조선민족전선연맹 대표,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인민공화당 대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 그가 역임한 직위만도 10개가 넘는다.
광복 뒤 환국한 조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테러의 위협과 정치적인 모략이었다. 그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좌우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고, 이승만 세력에 빌붙은 친일 세력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는다. 결국 김원봉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1958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도 그의 설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우파의 김구 선생과 함께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역사 속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한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모략 속에서 그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왔기 때문이다.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
약산 김원봉은 남한과 북한 정권으로부터 ‘반역자’ 취급을 받고 철저히 배척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인 의열투쟁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록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약산 김원봉을 다룰 때는 보통 ‘픽션’ 형태를 취하거나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삼웅은 30여 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약산 김원봉의 삶을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했다. 의열단 창단의 의의,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집필 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실질적인 동기 그리고 월북과 그의 의문의 죽음 등 역사적인 사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재조명한 것이다. 이 책에는 일본 정보기관의 기록, 각종 증언록 등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약산 김원봉을 심도 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광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다. 김원봉의 월북과 의문의 죽음을 비롯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김원봉이란 존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한국현대사의 전면으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해방 후 양민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 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위서》《白凡 金九全集》(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박열 평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 등이 있다.

●  본문 중에서
김원봉은 자신의 생애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제1기생 졸업식에서 목 메이는 어조로 “강도 왜노를 몰아냄으로써 조선의 절대독립과 동삼성의 탈환을 기하자”고 역설했다. 1기생 졸업식에서 행한 김원봉의 훈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지들은 졸업 후에 차차 개별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입교 시기의 혁명적 정신을 잊지 말고 조국을 위해 크게 투쟁할 뿐 아니라, 6개월 동안 받은 교육을 기초로 삼아 공부와 연구를 거듭하여 진취적인 정신을 기르고 결사적인 투쟁을 계속하여 우리들의 강토에서 강도 왜노를 몰아냄으로써, 조선의 절대독립과 동삼성의 탈환을 기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혁명투쟁을 위해 헤어진 동지들이 최후에는 반드시 목적을 달성하고 기쁜 얼굴로 서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8장 중에서>

 1938년 10월 10일 오전, 한구 중화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의용대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결성식에는 100여 명의 대원이 자리잡았고 각 지역에서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한국인과 중국의 군·정 관계 요인들이 참석했다. 대장으로 추대된 김원봉은 제1지대와 제2지대의 지대장에게 각각 군기를 수여하고 ‘朝鮮義勇隊조선의용대’라는 한자 다섯 자와 ‘Korean Volunteer한국의용군’라는 영문이 새겨진 배지를 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대원들은 태극기와 군기를 앞세우고 당당하게 김원봉 앞에 도열했다. 김원봉은 대원들에게 “중국혁명이 완성되지 못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에 대한 압박과 착취가 날로 심하며, 한국민족이 해방되지 못함으로써 일제의 중국대륙 침략이 더욱 포악해졌음이 사실이다. 조선의용대의 기치를 높이 들고 중국 형제들과 굳게 손잡고 최후의 일각까지 분투하자”고 역설했다. 또 “우리의 역량이 작다고 깔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3000만 민중은 모두 우리의 역량”이라는 김원봉의 연설은 대원들의 가슴을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조선의용대 대원들이나 내빈 그리고 주역인 김원봉에게 무장부대의 창설은 생애를 두고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행사가 되었다. 비록 남의 나라 땅이지만 당당하게 무장한 군사력을 갖춘 조선의용대가 출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1장 중에서>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김원봉의 존재가 대단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김원봉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는 황용주(전 MBC 사장)의 증언 등을 종합할 때 두 사람의 사이, 그 내면의 관계는 ‘빙탄불상용’과 같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이미 남로당계 인사들과 연안파 독립운동가들을 숙청한 바 있다. 이제 김일성의 절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인물은 연부역강한 김원봉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숙청되었을지 모른다.
숙청 과정에서 자결이냐 살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은밀하게 살해됐을 수도 있고 옥중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자살을 택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되었을 수도 있다. <16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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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산 김원봉 평전
분야 : 인물/평전
지은이 : 김삼웅
판형 : 4*6변형(120*188) 양장
쪽수 : 656쪽
가격 : 16,500원
발행일 : 2008년 2월 11일
ISBN : 978-89-5940-092-8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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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도의 범부 출신 전봉준이 한국 근대사의 걸출한 ‘반역자’가 되어 반봉건과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맹활약하다가 장렬하게 산화하기까지 그 일대기가 바른 역사 찾기에 앞장서고 있는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꾸밈없는 필력으로 되살아난 책이다.
영웅 만들기에 급급한 찬사 일변도의 여타 위인 전기와는 달리, 서로 다른 관점의 사료들과 관련 분야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편향됨이 없이 제시함으로써 논란거리인 몇몇 주제들에 구애되기보다는 오히려 조선 후기 시골 출신인 일개 농촌지식인이 세계 민중사에 유래가 드문 혁명군의 지도자로 우뚝 서는 전반적인 과정을 경이로운 시각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 일반 평전에 비해 여러 문인의 글과 시도 비중 있게 수록되어 있어 한 권의 문학 전기로도 손색이 없는 평전이다.

● 시대의창 리뷰

범부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민중혁명 지도자로 산화한 영혼에 바치는 서사시

    역사책 속에 나오는 태생과 환경이 비범한 인물들 가운데서 전봉준은 하나의 혁명 같은 존재이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농민들처럼 주목받지 못한 채 빈곤하고 고된 일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평민으로 자랐으나 마침내 한국 근대 민중사의 절정인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가 되고 세도정치의 폐해와 제국주의의 위협 아래 신음하던 조선 후기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체제를 주창한 진보적 사회정치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전봉준은 민중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번에 나온 《녹두 전봉준 평전》은 전봉준의 이와 같은 일생의 변모를 다룬 책으로, 조선 후기 평범한 농촌지식인이 한국 근대 민중사의 절정인 동학농민혁명을 진두지휘한 민중의 명장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우선 놀라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봉준의 일대 변신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다루기를 먼저 선택함으로써 사료와 기존의 연구 자료가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논란거리들(전봉준과 대원군과의 관계, 김개남 장군과의 관계 등)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관심사를 전개하는데, 특히 동시대의 대다수 농민들과 같은 삶을 이어가면서도 팍팍한 조선의 현실을 직시한 채 좋은 세상을 실현하고자 보국안민의 길을 궁리하던 전봉준이 동학에 입교하여 그 길을 찾고자 했으며,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 반봉건, 반외세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에게 민본주의와 동양 사상의 주체성을 강조한 동학이 정신적 지주이자 농민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적 활동의 원천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나 이듬해 3월 처형되기까지 전봉준이 진두지휘한 동학농민전쟁은 19세기 말 이 땅의 민중이 어떻게 역사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접전과 휴전 시기를 아울러 1년 4개월 남짓한 전쟁 내내 동학농민군의 최고지휘자 자격으로 전봉준이 고시한 격문과 통문들을 살펴보고 특히 전주화약이 체결된 이후 집강소 설치와 운영을 중심으로 그가 지휘한 농민군의 활약상을 주목하면 동학농민전쟁을 당시 지배계급과 외세에 대한 단순한 ‘저항’으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은 동학농민전쟁이 저항을 넘어서서 우리 근대사에 어떤 비전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농민들이 구체적으로 지향한 사회적, 경제적 방향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전국에 집강소가 설치되고 유능한 ‘공화주의자들’이 정사를 맡으면 농민군들은 생업(농업)에 복귀하여 그 본분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전봉준의 발언을 반추하며 그 답을 가늠해볼 일이다. 또한, 현존하는 사료와 기존의 학문적 연구 결과의 틀을 벗어나 여러 편의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옮겨놓은 서정성이 강한 평전이어서 딱딱한 역사 속 인물서가 아니라 마치  한 권의 영웅시를 읽는 듯한 감흥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범부 전봉준이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변모하면서 봉기했던 때를 고질적으로 닮은 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과 외세의 극복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다. 무슨 영웅이나 대단한 애국자는 아닐지라도 이런 동시대의 현실을 직시한 채 우리 사회의 비전을 모색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친일정치 100년사』『해방 후 양민학살사』『한국현대사 바로잡기』『왜곡과 진실의 역사』『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한국사를 뒤흔든 위서』『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백범 김구 평전』『단재 신채호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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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 전봉준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568쪽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7년 6월 11일
ISBN : 89-5940-068-3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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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 시대의창 리뷰

“임종국 선생의 생애와 저술 활동, 사상에 대한 총체적 해설”
 
해방 60주년이 지난 지금, 우린 아직까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그 청산 대상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역사를 농단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각국의 엄혹한 나치 잔재 청산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물론 이들 유럽 각국은 혹 있을 과거사에 대해서도 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응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했으며, 그나마 마련된 법안조차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누더기가 되었다. 또한 법제화 이후 조사결과에 따른 정치적 논쟁이 우리 사회를 한 차례 휘몰아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역사적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친일 청산의 기회 마련한 임종국 선생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일제 청산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법제화에 성공한 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한다. 바로 임종국 선생이다. 비록 선생이 살아생전에 한 일은 아니지만 선생의 친일 연구 업적이 단초가 되어 많은 후학들이 친일 연구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 뜻이 모여 이렇게 친일 청산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임종국 평전』은 후학 중의 한 사람인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이 친일 연구에서 얻은 자료와 선생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동감 넘치게 쓴 독특한 평전이다. 저자는 여느 평전에 더해 선생에 대한 비판, 연구 저술에 대한 명확한 해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한 소심한 성격, 독서회 사건으로 경성사범학교 중퇴, 어머니와의 불화로 서울음악학원 중퇴, 3년간의 경찰관 근무, 『친일문학론』 집필 동기, 증거 자료 보자며 찾아온 어느 친일파 후손 이야기, 『조선』『동아』기자가 앞 다퉈 선생을 찾았던 사연 등)를 통해 선생의 인간적 모습과 고뇌, 연구 집필에 대한 단상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저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추적하고 확인하여 정확성이 보태졌고, 그런 과정이 평전의 엄숙함을 깨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한 가족들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 공개 등은 혹 있을 선생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시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책에서는 첫 부인과의 두 번 이혼과 재혼 이야기, 화장품 외판원 등 선생의 가정사 역시 민망할 정도로 모두 공개됐다. 그리고 뒤에 덧붙인 집필 일기에서는 저자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친일문학론』으로 본격 친일 연구
일찍이 문학도이고자 했던 선생은 대학 시절(고려대학교) 시인 이상과 닮은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사실 선생은 고시 공부를 통해 판검사가 되고자 했으나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몸과 정신에서 좌절과 절망에 이르렀고, 결국 고시를 포기하면서 시인 이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펴낸 『이상전집』은 문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 선생이 곳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심지어 이상이 일본서 보낸 편지까지 유족들에게 입수해 펴낸 역작이다. 저자는 『이상전집』 이후 출간된 다른 이상 연구 관련서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상전집』의 성과와 오류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평가를 시도한다. 이제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된 선생은 드디어 『문학예술』에 「비碑」로 등단하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선생은 총 10여 편의 시를 남겼으나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저자는 선생의 유품 중에 나온 시 몇 편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했다.

스승 조지훈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서울신문』 연재 「흘러간 성좌」는 선생의 친일 연구의 단초가 된다. 예술계의 기인을 발굴해 연재했던 이 글에서 선생은 각종 자료들을 조사할 수 있었고, 당시 한일회담에서 오는 정치적 난맥상, 『친일파군상』에서 받은 충격으로 『친일문학론』을 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생이 남긴 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설명한다. 『친일문학론』은 천황과 일제를 위해 바친 매국매족의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기록한 최초의 친일 문학 연구서였다. 이 책에는 그 당시 우리 문단에서 존경을 받던 인사들이 총 망라됐으며, 심지어 선생의 스승인 고려대 유진오 총장과 부친의 친일마저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냉대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때부터 선생의 연구는 고독 그 자체였다.

못다 이룬 친일 연구 후학들이 계승
선생은 친일 연구를 하면서 위토혈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망가져가는 몸을 붙들고 『한국사회풍속야사』『일제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침략사』『일제하의 사상탄압』『한국문학의 민중사』『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 2』『정신대 실록』『친일논설선집』등을 숨 가쁘게 쏟아냈다. 한편 저자는, 선생이 일본인 오오무라(『친일문학론』일본어 번역)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언급한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시각이 잘못됐다며 논거를 통해 비판하고, 미야타 여사(자신의 저서에서 『친일문학론』 언급)에게 편지를 보내 “책에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어쩔 수 없었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선생의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살아 계시다면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저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총론-친일시에 대한 소견」에 대해 친일 문제 연구가 입장에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문덕수 시인의 유치환 옹호 칼럼에 대해서도 친일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치졸하다며 엄중 비판한다.

선생은 말년에 친일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총사』(총10권)를 공동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은 선생의 지병이었던 폐기종으로 인해 펜을 놓으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연구 업적은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물려져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고, 친일 청산 법제화가 이루어지면서 고독한 연구가 아닌 국가적 과업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겐 “벼락이 떨어져도 내 서재를 떠날 수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현재 진행형인 친일 청산의 의지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건히 지켜나가는 일만 남았다.  

● 지은이: 정운현
1959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대구고, 경북대, 고려대 언론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해 기자로 근무하면서 1988년 무렵부터 친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존 성과 탐독과 자료 수집에 전념했다. 1998년 8월 『대한매일』(현 『서울신문』)로 자리를 옮겨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친일파 열전」을 장기간 연재했다. 2002년 1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초대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2005년 5월까지 근무했으며, 그해 6월부터 반민특위의 후신격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 옮겨 현재 사무처장으로 재직중이다.

펴낸 책으로는 『친일파-그 인간과 논리』(공편·1990·학민사), 『친일파 2』(공저·1991·학민사) 『친일파 3』(공저·1992·학민사), 『창씨개명』(편역·1993·학민사), 『친일파 죄상기』(공편·1994·학민사),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저서·1995·한울), 『중국대만 친일파재판사』(역저·1995·한울), 『호외, 백년의 기억들』(저서·1997·삼인),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편저·1997·없어지지않는이야기),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증언 반민특위』(저서·1999·삼인),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저서·1999·개마고원), 『실록 군인 박정희』(저서·2004·개마고원)가 있다.
* 저자 연락처 :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02-2100-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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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국 평전
▸ 분야 : 인물/평전
▸ 지은이 : 정운현
▸ 제본 형태 : 양장
▸ 판형 : 4*6변형(120*188)
▸ 쪽수 : 628쪽
▸ 가격 : 16,500원
▸ 발행일 : 2006년 11월 12일
▸ ISBN : 89-5940-053-X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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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이면서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로서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애국지사다. 선생은 최남선의 「독립선언서」가 마음에 차지 않아 ‘공약삼장’을 추가하여 민족혼과 애국혼을 일깨웠다. 또한 일본인 검사의 심문에 「조선독립이유서」를 작성해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결연한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명논설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당시 한국 불교의 낡은  정신을 비판하고 당면 과제를 지적해 자유․평등주의 사상에 입각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기도 한 선생의 『님의 침묵』은 한국 시문학의 금자탑으로 조국애와 민족의식을 한껏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선승으로서, 독립투사로서, 실천적 종교가로서,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역사의 종․민족의 종으로서, 고난의 민족사와 함께한 천석千石들이 종鍾이었다.

● 시대의창 리뷰

“시인이자 투사였던 천석들이 종”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하게 하라.”

이상은 친일파 최남선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이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만해 한용운 선생이 추서함은 물론 「독립선언서」까지 윤문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까지 학계는 이 주장에 대해 팽팽하게 대립을 하고 있지만 “때가 아닐 때 경솔히 행동하지 않겠다”고 말한 최남선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볼 때 공약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만해 한용운 평전』은 공약삼장을 만해 선생이 추서했다고 주장하며 독립투사로서, 실천적 종교가로서, 시인이자 소설가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찬찬히 조명한다. 특히 지금까지 출판한 각종 전기류에서 만해의 아버지가 의병활동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의병 활동을 탄압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만해의 의식 속에는 늘 ‘부친 콤플렉스’가 잠재돼 있어 더욱 민족적 대의를 추구하게 되고 정도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아울러 펼치고 있다. 이 책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현대인물시리즈 네 번째 편이다.
실천적 종교가로서의 만해는 명논설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그 진면목을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이 논설은 당시 조선 불교의 현상을 비판하고 당면 과제를 지적하여 자유․평등주의 사상에 입각, 개혁안을 제기한 실천적 지침서였다. 여기에는 만해의 모든 교육과 사색과 견문이 쇠락한 조선 불교의 현상에 대해 전면적이고 비판적인 형태로 집약되어 있는 것은 물론 만해의 장래의 사상과 행동이 총체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이 논설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승려의 결혼를 허해야 한다는 14장은 이미 만해가 통감부에 보낸 건백서의 주장을 실어 호되게 비판받기도 했다.
독립투사로서의 만해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3․1운동을 주도하고 공약삼장을 추서하는 등 민족대표로서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일본인 검사와 경찰의 심문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조선독립이유서」를 작성해 독립의 당위성을 대내외 천명하였다. 이 논설은 「독립선언문」보다 한걸음 나아간 것이요, 조리가 명백하고 기세가 웅건할 뿐 아니라 정치 문제에 몇 가지 예언을 해서 적중한 명문이라고 조지훈은 그 의미를 평가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만해는 한국 시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님의 침묵』을 남겼다. 여기서 님은 민족, 조국, 민중, 불타, 중생, 불교의 진리 등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민족의 독립과 조국애의 열망을 담고 있다. 아울러 만해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선시’를 개척해 지눌대사의 법통을 잇기도 했다. 한편 문학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흑풍』 『박명』 등의 장편소설을 연재해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만해는 불교 개혁과 민중 계몽을 위해 『불교』를 발행했고,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 단체인 신간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만해 한용운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제에 드러내놓고 저항한 유일무이한 독립투사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만해를 일컬어 크게 치면 칠수록 큰소리로 울리는 역사의 종, 민족의 종인 ‘천석들이 종’으로서 평가하고 있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 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백범 김구 전집』 (12권, 공저)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저)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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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628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6년 8월 15일
ISBN : 89-5940-046-7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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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선비’ 남명 조식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심산 김창숙 선생은 파란굴곡의 시대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정도만을 당당히 걸어온 참선비였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후에는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통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다. 여든네 살의 생애를 외세와 불의에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일관해온 선생은 자신의 몸은 물론 가정도 돌보지 않고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싸웠다.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두 다리가 마비되어 평생토록 앉은뱅이로 삶을 보냈지만 어느 누구 못지않은 꼿꼿함으로 통일조국수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을 벌이는 한편, 유림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성균관을 수호했다. 일제 청산을 하지 못해 오늘날까지 친일 잔당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선생의 서릿발 같은 삶은 우리의 투지에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 시대의창 리뷰

“항일 투쟁과 민족통일운동에 바친 참선비의 삶”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일으킨 거족적 민족운동인 3․1운동.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지만 여기엔 유림대표가 빠져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유교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림대표가 빠져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때 이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며 통곡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심산 김창숙이다. 사실 심산은 「기미독립선언서」에 유림대표로 적극 참여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곁을 떠나지 못하다가 때를 놓쳐 서명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심산은 새로운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파리장서」 사건, 이른바 제1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킨다. 영남과 호서 134명의 유림대표가 서명한 「파리장서」는 심산이 준비했으며, 이를 휴대하고 단신으로 상해를 거쳐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하려고 했으나 이미 신한청년당 대표로 선정된 김규식이 독립운동 단체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어서 그를 통해 전달하기로 한다. 3월 말 국내에도 각 학교에 「파리장서」를 우송하려고 했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대다수의 유림들이 일경의 잔혹한 고문으로 죽거나 처형당하였다. 바로 제1차 유림단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뒤에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통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인 심산 김창숙. 그는 한국의 마지막 선비였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현대인물시리즈 세 번째인 『심산 김창숙 평전』은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두 다리가 마비되어 평생토록 앉은뱅이로 삶을 보낸 선생의 일대기를 오롯이 그려낸다. 심산은 「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가 빠졌다며 유림대표들을 모아 「파리장서 사건」을 일으키고, 국내의 독립운동 열기가 식었다며 청년결사대를 국내에 잠입시켜 나석주 의사 의거를 일으킨다. 또한 중국에 망명해 있다가 독립운동 기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몰래 잠입하기도 했으나, 훗날 심산이 비밀리에 국내를 다녀간 것이 밝혀져 600여 명의 유림 인사들이 고문과 옥고를 겪는 제2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심산은 우리 민족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몸은 물론 가정도 돌보지 않고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싸웠다.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의연히 맞서는가 하면 일제 관리들을 감복시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기도 했다. 한편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의 『일선융화론』의 첫 몇 장을 읽고 책을 던지며 “일본에게 붙어 버린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심산은 신탁통치 반대와 국토 분단인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단호하게 반대하며 투쟁한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정치상황에서 심산은 유림을 재건하기로 마음먹고 성균관을 복원해 오늘날의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한다. 그러나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던 이승만 독재 정권은 이승만 하야를 요구했던 심산에게 정치적 보복을 저지르고 성균관에서 쫓아낸다.
심산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이 있으면 끝까지 맹렬하게 투쟁하는 진정한 참선비의 삶을 산 것이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몰락을 지켜본 심산은 1962년 5월 10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올곧은 선비 정신으로 반외세․반분단․반독재 투쟁에 앞장서 온 심산은 세속의 부귀를 탐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청렴․강직한 지조를 지켰다. 아직도 친일파들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심산의 선비 정신은 우리의 청산 의지에 힘찬 기를 불어넣고 있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 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백범 김구 전집』 (12권, 공저)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저)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등이 있다.

차례 보기


● 심산 김창숙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538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6년 3월 24일
․ISBN : 89-5940-024-6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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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함석헌 평전』은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엮은 고난의 역사서이자, 부끄러운 과거사의 고백록이다. 분단을 중심으로 전반기 생애에 선생은 인류의 평화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교사로서,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후반 생애에서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분열된 우리의 관념을 물리치고자 했던 투쟁전선이었다. 이 책은 함석헌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연대기적 순서를 바탕으로 삼되, ‘객관적인 역사 사실’의 서술뿐 아니라 선생의 철학적․종교적 심리 변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여 분석한다. 이제 함석헌 선생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면서 아직까지 분단 이데올로기에 갇혀 사상을 재단하고 인신을 구속하는 등의 냉전주의를 극복해 탈민족주의, 탈근대주의, 탈냉전주의가 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시대의창 리뷰

“역사가 함석헌, 언론인 함석헌, 사상가 함석헌을 오롯이 관조할 수 있는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 ”

정말이지 한국에선 사상의 자유가 힘든가 보다. 최근 강정구 선생의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것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보다는 힘(국가권력)으로 인신을 구속하려 하고 어쩔 땐 사상 전향마저 강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악법인 국가보안법(개폐의 요구가 있지만)으로 인해 법집행을 한다고는 하지만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이 부추기는 측면이 커 보이고, 선거를 의식해 표 모으기 전략이라는 의구심도 있다. 21세기를 산다고 하지만 20세기 국가권력의 폭력이 개인의 사상과 자유를 짓밟고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 우린 냉전과 근대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20세기 국가권력의 폭력을 극복하고 사상의 자유를 실천하고자 했던 함석헌 선생처럼 어쩌면 강정구 선생은 그 기나긴 ‘고난의 길’을 되짚어 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마저 든다.
『씨알 함석헌 평전』은 이처럼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함석헌 선생의 긴긴 발걸음을 오롯이 담아낸 20세기 역사서이자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춰낸 고백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함석헌 선생의 출생 시점부터 운명하던 그 순간까지 전체 생애를 일관해서 볼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이고 연대기에 의지해서 시간적, 사건적, 그리고 심리적 변화에 중점을 두고 접근했다. 다시 말해 역사적 관점은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했으며, 선생의 내면 심리 변화에 대해서는 좀더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예를 들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서역사」가 발표되던 전후의 청년 교사 함석헌의 고뇌와 신앙생활을 매우 구체적인 기록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선생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선생에게 영향을 끼쳤던 사상가들(간디, 마치니, 비코, 헤르더 등)의 사상적 견해가 교차하여 함께 어우러진다. 또한 연구자들에게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청년 함석헌의 사회주의에 대한 종교적 관점과 우찌무라의 대속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던 심리적 변화 과정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선생의 위대함과 영웅화를 거부하고 소박하면서도 평범한 인간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정치적인 사건 중심보다는 그 사건에 임한 선생의 가치관과 마음의 행로에 중점을 두고 서술했다.
그럼 선생의 발자취를 여섯 시기로 나누어 한번 살펴보자.

연한 갈대의 어림(1901~1919) 3.1운동까지
평안북도 용천군 사점에서 출생한 선생은 다섯 살까지 서당에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등을 배우고 덕일소학교에 진학해 유년필독, 사민필지, 산술, 역사, 지리 등을 배운다. 학교에 다니던 중 집안 형인 함석규 목사에 의해 기독교 학습교인을 인정받는다. 16살에 관립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나 19살 되던 해 3.1운동이 선생의 인생항로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당시 평양고보를 졸업하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었으나 선생은 의사의 꿈을 버리고 “이 나라 있은 이래 3.1운동에서 더 큰 더 거룩한 일이 무엇이 있겠나”며 스스로 자퇴한다. 이로써 선생의 험난한 ‘고난의 길’은 시작된다.

푸른 갈대의 젊음(1919~1928)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 역사 선생으로 등장하기 전
자퇴한 이후 2년간 “속을 썩힐 대로 썩히면서” 명신소학교 선생과 수리조합의 조합원으로 지냈던 선생은 함석규 목사의 권유로 민족학교인 오산학교에 편입한다. 이때 평생 스승 다석 유영모와 사제의 첫 인연을 맺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길을 닦는다. 스승 유영모의 동서양 사상과 당대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습득했던 탓인지 선생은 인생과 역사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자극한 서구의 사상가들을 만난다. 톨스토이, 노자와 장자, 간디, 베르그송, 입센, 블레이크, 타고르, 웰즈, 투르게네프, 괴테, 쉴러, 니체, 칼라일 등을 통해 수줍어하던 겉모습과는 달리 격동하는 시대의 처절함을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떠난 선생은 관동대지진을 겪으면서 ‘인생대학’이라는 감옥생활을 처음으로 겪게 된다. 이 지진을 통해 선생은 정치적 선동에 속았을 때 더없이 어리석은 민중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고, 동시에 그 민중들이 정치적 미신 속에서 살인자로 돌변시키는 국민국가의 국가주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체험한다. 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 평생의 친구이자 교육자였던 김교신을 만나 성서연구회에 참석하고, 우찌무라의 제자가 된다. 선생이 우찌무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대속 신앙이었다. 이는 인간의 죄는 도덕적 행위로 극복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한다는 것이다. 4년간 선생은 이마이칸의 성서연구회에 다니면서도 스승의 종교관을 뛰어넘는 탈우찌무라의 길과, 세계평화를 꿈꾸는 세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 이 시절 앞서 졸업한 동창생들과 함께 유석동을 발행인으로 하여 6인의 동인지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생애 최초로 「먼저 의를 구하라」는 글을 발표한다. 『성서조선』은 창간사에서 『성서』만이 조선을 구할 수 있다며 조선의 교회를 비판하면서 무교회 신앙을 천명한다.

누런 갈대의 일함(1928~1938) 오산학교 선생 시절
일본에서 귀국한 선생은 자신의 모교에서 “있는 정성을 다 붓고 싶은 심정”으로 역사 선생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10년간의 교사 시절은 선생에게 “황금시대”였다. 파란만장했던 긴 생애에 있어 매우 드물게 보이는 평온한 시절이기도 했다. 선생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월급 모두를 책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수업은 늘 엄격했으며 일본어로 된 교과서에서 일본어를 빼고 한자만 골라 가르치는 등 빼앗긴 나라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길을 늘 강조했다. 일부 학생들은 이 시기 선생이 『성서조선』에 연재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원형, 이 책에서는 『조선역사』에 대한 후대의 평가와 함께 저자의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를 돌려가며 읽는 일까지 있었다. 「조선역사」는 선생이 제2회 동계성서강습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성서조선』에 22회에 걸쳐 연재되었으며, 고난의 역사를 짊어진 우리 민족이 결국 세계사에 기여할 것이라는 식민지 현실과 정면 대결하는 역사인식 때문에 일제의 감시에 늘 시달려야 했다. 또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기독교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교육문제」 등을 연이어 발표해 오산학교 선생 시절은 바야흐로 선생의 역사연구의 산실이 되었다. 선생은 일제의 민족적 굴욕을 강요하는 조선총독부의 교육 방침에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과 함께 결국 교사직을 사임하고 들사람으로 돌아간다.

굽은 갈대의 찾음(1938~1955) 제2차 세계대전, 해방과 분단, 월남, 내전
계속된 동계성서 강습회에서 선생은 「히브리서」(제7회)를 강의하고 「묵시록」(제8회)을 연구 발표한다. 한때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평양 송산농사학원(덴마크식 교육기관)을 인수해 종교와 교육과 농사를 창조적으로 일체화시킨 실험을 단행한다. 하지만 송산농학원의 전 주인이던 김두혁이 동경에서 항일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계우회 사건으로 선생은 평양대동경찰서에 투옥된다. 생애 세 번째 옥고였다. 선생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는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늘 눈엣가시였던 『성서조선』의 김교신, 송두용, 유달영 등을 엮어 『성서조선』지 사건으로 또 한 차례 투옥시킨다. 이때는 식민지 조선 말기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도 상당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선생은 출옥과 함께 ‘똥통을 멘 채’ 영락없는 농사꾼으로서 날마다 밭에 나갔다. 하지만 농사꾼도 얼마 가지 못했다. 식민지 해방은 선생을 용암포자치위원장, 용천군자치위원장, 평안북도문교부장으로 내몰았으며 또 한 차례 신의주학생사건으로 인해 소련군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결국 선생은 지주 땅 몰수 정책으로 전 재산을 잃고 홀로 월남하여 분단시대의 암흑기를 관통하는 역사의 안내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삼팔선을 넘을 때 선생은 북한사람이 아닌 한국인으로, 나아가 세계인으로 살아갈 운명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 시기 선생의 사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유영모 선생을 모시고 새삼 동양사상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역사를 고처 바라보고 인생을 고쳐 씹고 『성경』을 고쳐 읽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변화는 6.25 이후 「새 시대의 하나님」 「흰 손」 「대선언」 등을 통해 탈우찌무라로 나타났다.

마른 갈대의 깨달음(1956~1980) 『씨알의 소리』 창간 등 역사를 위한 투쟁시기
내적인 목소리를 가다듬은 선생은 이제 분단시대의 들사람으로 등장한다. 『사상계』에「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는가」로 민중의 고난을 방관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일침을 가해 파란을 일으키고 명동 성당 신부 윤형중과 지상 논쟁을 벌인다. 전반기 선생의 생애에서 김교신이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면 후반기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는 김교신과 같은 존재였다. 『사상계』는 50년대 자유당 독재와 부패를 공격하는 지성의 참호였으며,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투쟁전선이기도 했다. 한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 때문에 국가보안법 혐의로 남한에서 처음 투옥되기도 한다. 4.19혁명을 거쳐 5.16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동안 선생은 자신의 로맨스로 인해 마음의 연옥에 빠지기도 했으며 후반기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사상을 이 시기에 만난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선생을 30년간 민주화운동으로 내몰아 고난의 역사를 이어가는 운명이 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한일협정 반대 투쟁, 반독재 투쟁, 삼선개헌 반대 투쟁, 반유신 개언청원 백만인서명운동, 명동3․1구국선언 등)으로 민중의 지표가 되었다. 70년대 선생이 창간한 『씨알의 소리』는 한국민중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였다. 두 번의 폐간에도 『씨알의 소리』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인권, 평화, 민족 통일을 제창해 기존 언론들이 하지 못한 언론의 제 기능을 수행했다. 『씨알의 소리』 편집자와 필자들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당대의 유력 지성인들이었다.

꺾인 갈대의 날아 올라감(1980~1989) 자신의 모든 진실을 자신의 최후까지 쏟아 붓던 시기
퀘이커 세계대회에 참석차 미국에 머물렀던 선생은 10.26으로 급거 귀국하지만 전두환군사정권에 의해 구속당하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씨알의 소리』마저 폐간 당한다. 하지만 선생의 가열 찬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 간디 서거 34주기 추모 강연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전두환 정권을 공개 비판했고, 광주항쟁 3주년을 맞이하여 구속인사 석방과 해직교수 복직을 요구하며 단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은 두 번에 걸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터진 정권교체의 열망을 선생은 양김(김영삼, 김대중)에서 찾았으나 이들의 결별로 크게 실망하고 투표마저 포기한다. 결국 선생은 오산고등학교장에게 자기 몸을 학생들의 실험용으로 기증한다는 유언을 하고 89년 88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첫째, 분단 이후의 세대가 잘 알지 못하는 20세기 현대사를 선생을 통해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저항적 삶으로 일관한 함석헌의 양심으로 철저하게 부정한 국가권력이 아직까지 정치적 미신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셋째, 정의롭고, 겸손하고, 깨끗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함석헌의 삶이 종파심이나 교파심이 아닌 바로 종교적 터전에 기인했다는 사실 때문에 인식 주체인 인간에게 존재 주체인 ‘님’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넷째,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역사와 인생은 ‘나’에게 외상이 없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처럼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함석헌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함석헌의 인생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은 세속적 욕망이 빚어낸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부모로부터 타고난 착한 품성, 훌륭한 스승의 안내, 참다운 친구의 우정들이 일구어낸 향기로운 정신세계라는 사실이다.

● 지은이: 이치석(李致錫)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현재는 역사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프랑스 Tours대학교 대학원(석사)과 Amiens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D.E.A취득)했다. 논문(불문)으로는「Rapport entre le changement du pouvoir politique et la mentalité collective en Gaule à l'époque Mérovingienne」가 있고, 저서로는 『전쟁과 학교』(문광부추천도서)가 있다.

차례 보기


● 씨알 함석헌 평전
지 은 이 : 이치석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664면(+화보 32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5년 11월 15일
ISBN : 89-5940-013-0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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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애는 망국 시대에 모든 것을 바쳐 일제와 싸운 처절한 혁명가의 삶이었으며, 오로지 일제 타도와 조국 해방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선생은 일제 타도를 위해 언론․문학․사학․대종교․아나키즘․의열단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싸웠으며 오늘날 각 분야의 큰 업적을 남겨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공정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민족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는 지금, 선생은 이미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찬란한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고 복원하였다. 오늘 우리가 선생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다시 더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 시대의창 리뷰
“아와 비아의 투쟁적 삶을 살다간 고결한 혁명가”
독립운동사에서 단재 선생만큼 남북한 공히 존경받는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에서 독립투사들의 이념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선생만은 자신이 남긴 업적만큼이나 위대한 혁명가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한이 전쟁을 치룰 만큼 한쪽의 역사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아직도 선생의 국적조차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책 <단재 신채호 평전>은 단재 선생의 생애를 연구하고 선생의 발자취를 끊임없이 찾아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던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발로 쓴 역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실제 저자가 몇 차례 뤼순 감옥을 방문해 입수하게 된 선생의 감옥 입소 때 찍은 사진을 게재했으며, 잡지 <천고>의 2권을 연변에서 입수해 최초로 국내 언론에 소개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선생의 국적회복은 물론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흩어진 단재 선생의 자료들을 모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출간하자고 호소한다.

단재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자신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일컬었던 역사의 정의만큼이나  치열하게, 또는 고뇌하며, 고결하게, 한점 흐트러짐 없는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또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선생이 남긴 업적 또한 오늘날의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단재는 사학자로서 민족사학의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국 고대사 복원은 물론 잘못된 역사의 과오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이러한 단재사학의 가장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낭가사상’은 민족사상의 기원, 전승, 기능을 구명하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근대적 자주독립정신을 세워 민족의 진로와 시대정식을 밝히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선생이 남긴 <조선상고사> 등 수많은 저작물들은 오늘날 역사 연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단재는 결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겠다. 선생은 일찍이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을 뿐 아니라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의 후반부 원고 집필을 도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방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통렬히 비판하는 논설과 사설들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이 시기 애국심과 자강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해외 역사 서적을 번역(<이태리 건국 삼걸전>)하고 한국 사상의 영웅전(<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선생은 망명길에 올라서도 <대동공보>에 관여하고 <권업신문> 주필로도 활약했다.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항일신문 <신대한>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개인잡지 <천고>를 발행, 중국인과 한국인을 결속하는 항일투쟁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열정을 불태웠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단재는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혁명가였다. 「의열단선언문」으로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은 일제 시대 수많은 독립 선언문 중에서 내용과 문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생은 이 선언문에서 폭력에 의한 민중의 직접혁명을 부르짖었다. 또한 고급 밀정 김달하를 처단했던 다물단의 선언문도 집필했으며, 단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조선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로서의 단재는 “지배계급이 민중들을 억압하거나 민중들을 속여 자신들의 지배에 복종시키고 혁명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이용하는 지배계급의 일체의 지배기관이나 수단은 파괴되고, 지배계급이 제정한 일체의 사회제도도 철폐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사유재산제도 부정되고 모든 재화의 공유제가 실시되어 일체의 착취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선생의 이러한 사상적 변화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지만 민족주의의 발전된 단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선생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을 실어 아나키스트 신채호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단재 선생이 서거한 지 7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친일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늦은 감은 없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청산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죽어라 독립운동해서 나라 찾았더니 친일파에게 진상한 꼴”이 되었다고 통탄한 바 있다. 자칫 이번 청산 작업에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엉뚱한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 이것은 선생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 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백범 김구 전집』 (12권, 공저)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저)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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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516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5년 8월 15일
ISBN : 89-5940-005-X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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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선생이 친일․분단 세력에 의해 서거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일제의 잔재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친일청산은 선생의 서거와 함께 지난 55년을 땅 속에 묻어야만 했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로 인해 현대사는 군부독재로 얼룩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 또한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반성이, 친일․분단 세력에 의해 국론 분열이며 이념적 갈등으로 매도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서 백범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원죄를 단죄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은 선생의 삶을 과대포장하거나 신격화하지 않았다. 단지 선생이 성실히 살아온 삶을 오롯이 담아내고 펼쳐 보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선생의 소원이자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과 친일청산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 시대의창 리뷰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총체적 저술”
평화와 자유는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추구해야할 보편타당한 가치이다. 또한 이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국가가 존립하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세계는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철저히 응징해 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평화와 자유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고 지켜야할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물려주고자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핍박과 억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의 대한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의 죽음을 불사르는 항거는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기는커녕 물질만능과 도덕적, 정신적 해이로 이어져 끊임없이 서로를 왜곡하고 매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몰락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열들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올곧은 삶을 재조명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책은 직접 김구 선생이 기술한 자서전인 <백범일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의 사상과 독립운동에 대한 논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백범 김구 선생의 평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백범 김구 선생의 평전을 출판한 이유는 이미 앞에서 기술한 정신의 계승과 발전도 있지만 더 이상 잘못된 역사(친일청산)를 되풀이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리영희 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김구 선생에 관한 문제별, 사안별, 시대별 따위의 단편적 전기가 아니라, 긴 생애의 시․공간적 행적을 씨줄로 하고 그의 내면적 성찰과 정신․사상적 궤적을 날줄로 엮은 총체적 서술”이라면서  “그 시기 이 민족의 값진 선각자들이었던 많은 애국지사들을 아울러서 거대한 만화경으로 제시해 주는 놀라운 저술”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연구만 해도 도서관을 지을 정도로 방대할 뿐 아니라 근현대사를 통틀어서 이 만큼 우리의 정신과 사상을 지배하는 인물도 드물다. 그러나 이런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단지 선생을 혁명가와 독립투사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백범 선생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미 광복 전에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강령을 만들어 사회주의 독립운동 정당과 단체들의 임시정부 참여를 유도했다는 점과, 아울러 선생의 연설과 언론 기고문, 어록 중에서 문화 사상과 관련한 부분을 발췌하여 선생의 애국 정신, 민주주의 정신, 통일 사상과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문화국가론’의 편린을 살펴보고 있다. 선생이 서거한 지 55년이 지난 시점에도 이와 같은 근본 사상이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선생의  위대한 정신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선생의 서거와 관련된 일련의 내막일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995년 13대 국회에서  ‘백범김구선생암살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회에 보고한 「진상조사 보고서」 중 암살 배후와 관련된 부분을 싣고 있다. 보고서는 안두희의 단독 범행이 아닌 면밀하게 준비 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적 차원의 범죄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만 이승만의 사전 개입과 지시는 불투명하고, 미국의 역할에 있어 암살에 대한 구체적 지시나 명령을 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민간 부분(역사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더 한층 촉구하고 있다.

이번 17대 국회에서는 지난 16대 국회에서 발의된 누더기 법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을 재손질해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미 이 법안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과 학자들이 그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친일 세력과 분단 세력들이 법안의 통과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백범 선생이 친일․분단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듯이 이 법안도 그들에 의해 고사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바로 55년 전으로 돌아간 시점과 너무나 똑같다. 이제 법을 통과시키는 것만이 55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소원’일는지 모른다.

* 백범 김구 선생의 삶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자주 평화통일에 모두 바치신 민족의 지도자이며 겨레의 큰 스승이시다.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에서 극빈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교육을 받았으며,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1894년 팔봉접주(八峰接主)로 임명되었다.
황해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였다. 동학농민운동 후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머물면서 유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유학을 배웠으며, 만주지역을 시찰하다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1896년에는 치하포에서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본 육군중위 스치다(土田讓亮)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인천감리서에 투옥되었다. 선생은 옥중에서 신서적들을 읽고 개화사상을 키웠으며, 탈옥 후 승려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899년 환속한 후에는 황해도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등 신교육운동에 노력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벌이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국권회복운동의 국내 최대 비밀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황해도 총감으로 활동하다가, 1911년 안악사건 105인사건 등으로 수감되었다. 1915년 출옥한 후에는 동산평농장의 농감생활을 하며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등을 역임하면서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지키고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진력하였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의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내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선생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피신생활을 하면서, 한인청년들을 중국군관학교에 입학시켜 군사훈련을 받게 하는 등 다가올 독립전쟁에 대비하였다.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한 선생은 임시정부 주석(主席)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이루었고, 연합국으로부터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는 등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선생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민족 스스로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반탁운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에는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 소위원회의 결의에 반대하며, 남북한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의하고, 평양에서 '남북조선제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하였다
이후 선생은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다가, 1949년 6월 26일 통일운동을 저해하려던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 주요서평
“백범을 주로 혁명가와 독립투사로 알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민족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로 문화․예술․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그 생애와 사상을 감동 깊게 발견할 수 있다.” _리영희

“백범의 삶은 민족 해방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너무나 잘 설명해주는 메시지이다.” _강만길, 상지대학교 총장

“역사는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길잡이다. 이 책은 백범 선생의 삶을 통해 일제 잔재를 하루빨리 청산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 _함세웅 신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시민연대 공동대표

“백범 선생은 분단과 독재의 비극적인 현대사에서 통일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사의 등대로 우뚝 서 있다. 저자의 각고의 노력에 의하여 재조명된 백범상은 우리 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_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지은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민족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 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백범 김구 전집』 (12권, 공저)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저) 등이 있다.

차례 보기


● 백범 김구 평전
․지 은 이 : 김삼웅
․판    형 : 4*6변형(120*188) 양장
․면    수 : 628면(+화보 56면)
․정    가 : 16,500원
․발 행 일 : 2004년 8월 15일
․ISBN : 89-89229-81-2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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